
2025년 4월 11일부터 7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는 론 뮤익 전시회는 그의 극사실주의 조각을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입니다. 전시장을 찾기 전, 그의 작품 세계와 대표작을 미리 알아두면 전시를 좀 더 풍성하게 관람할 수 있지 않을까요?
1.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
1.1. 진짜처럼 보이지만, 진짜는 아니다.
론 뮤익은, 호주 출신의 조각가입니다. 그에게는 극사실주의 조각가라는 타이틀이 붙어 다닙니다. 하지만 이 말이 만일 ‘진짜처럼 보이게 조각한다’라는 뜻이라면, 이 수식어는 틀렸습니다.
그의 인물 조각들은 피부의 주름, 솜털, 혈관과 흉터까지 정교하게 재현되지만, 크기만큼은 무척이나 과장돼 있습니다. 실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거나, 절반 정도의 크기로 축소되기 일쑤이죠.
이런 론 뮤익의 작품들은 때때로 너무 사람처럼 보여서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언캐니 밸리 조각 특유의 감정적 낯섦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론 뮤익 자신의 얼굴을 표현한 극사실주의 조각
<Mask II>
1.2. 현실과 비현실의 조합
“난 실물 크기의 조각에 관심이 없습니다. 매일 보는 실물 크기의 사람들은 내 흥미를 끌지 못합니다. 하지만 크기를 바꾸면, 우리가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더 집중하고 몰입하게 되죠.”
현실적인 디테일과, 비현실적인 스케일의 이질적인 조합 위에 서있는 론 뮤익의 조각. 그런데 그가 고집스레 붙잡는 건, 몸의 표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존재의 서사입니다.
“저는 몸에 집중합니다. 몸의 연약함, 결점,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요. 몸의 스케일과 리얼리티를 비틀어, 평소에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보는 방식을 흔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성찰이 일어나길 바라죠.”
1.3. 조각보다 사람에 집중하다
조각가가 되기 전, 론 뮤익은 영화·TV 분야에서 특수효과와 인형 제작에 종사했습니다. 그 경험은 오늘날 그의 유리섬유와 실리콘을 활용한 조형기술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관심을 두는 건 디테일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그 자체인데요, 론 뮤익 작품 해설에서 자주 언급되듯, 그는 르네상스 조각에 매료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르네상스 시대 조각은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와 사실성을 추구하며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의 전환을 보여주죠. 반면, 뮤익의 조각은 르네상스가 추구했던 이상화된 아름다움 대신, 연약함과 결점, 고독, 나약함을 품은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여줍니다.
2. 조각의 스케일이 주는 심리적 충격
뮤익이 만드는 조각의 크기는 실물과는 거리가 멉니다. 작은 크기로 축소된 커플을 조각한 《Spooning Couple》부터, 거대하게 확대된 얼굴 《Mask》까지 크기의 스펙트럼도 다양합니다. 극사실주의 조각가 론 뮤익에게 이런 스케일 변화는 인간 감정을 시각화하는 강력한 장치로 작동합니다.
론 뮤익의 <Spooning Couple> (2005)
론 뮤익의 <Mask> (1997)
“크기는 감정의 도구입니다. 저는 수학적으로 비율을 계산하지 않아요. 감각적으로, 종이에 스케치를 해보면서 '이 비율이 괜찮다' 싶으면 그대로 진행하죠.”
2-1. 왜 거대한 인물을 만들까?
우선, 론 뮤익의 작품 가운데 크기를 확대한 조각들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2025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도 주요하게 전시될 예정입니다.
- 《Mass》(2017) : 100개의 대형 해골 조각. 죽음의 무게, 집단적 상실, 전쟁의 기억을 시각화한 작업입니다. 이번 론뮤익전의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 《In Bed》(2005) – 6미터의 거대한 조각으로, 침대에 누운 여성의 불안과 고립, 중년의 내면 성찰을 표현합니다.
- 《Big Man》(2000) – 구석 모퉁이에 쪼그리고 앉은 남성의 조각으로, 크기는 2미터입니다. 무표정하지만 무겁게 가라앉은 내면의 감정이 움츠러든 자세를 통해 드러납니다.
- 《Couple under an Umbrella》(2013) – 파라솔 아래의 노부부는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그들의 태도는 중심이 아니라 주변화된 인물의 고요함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 《A Girl》(2006) -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나서 아직 피도 마르지 않은 거대한 신생아의 모습을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론 뮤익은 생의 경이로움과 잔혹함이 공존하는 모습으로 삶이 시작되는 순간을 포착해냅니다.
- 《Boy》(1999) – 웅크린 소년을 4.5미터의 거대한 크기로 확대한 조각입니다. 경계, 불안, 사춘기의 심리가 잘 표현돼 있습니다. ☞ 론뮤익 <BOY(보이)> 작품 보러가기
2-2. 스케일이 만드는 감정적 몰입
론 뮤익의 조각이 보여주는 거대한 크기는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감정적 거리와 몰입감을 조절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론 뮤익은 인간의 평범한 순간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증폭시킵니다. 크기를 키움으로써, 관객이 대상과 새로운 방식으로 조우하게 만들고, 자세히 보게 하고, 불편함을 느끼게 하고, 때로는 멈춰 서게 합니다.
“조각은 존재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공간과 관객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가 작품의 경험을 결정합니다.”
그의 조각 앞에서 ‘너무 크다’, ‘불편하다’, ‘무섭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론 뮤익은 관객들의 그런 반응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우리와 작품과의 접점을 만든다고 여깁니다. 극사실주의 조각이기에 가능한 몰입입니다.
비현실적으로 커진 인물 조각 앞에서,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감정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
2.3. 왜 어떤 건 작게 만들까?
거대한데 작아 보이는 존재가 있다면, 강해 보여도 연약한 인간도 있습니다. 론 뮤익의 대표작 해설에서 자주 언급되는 《Dead Dad》, 《Woman with Shopping》, 《Young Couple》, 《Woman with Sticks》 등은 실제보다 축소되어 만들어졌습니다.
- 《Dead Dad》 (1997) – 벌거벗은 채 누운 아버지를 표현한 조각. 론 뮤익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제작한 작품으로, 실제 자신의 아버지가 숨을 거둔 모습을 실제 크기의 절반으로 축소해서 표현했습니다.
- 《Woman with Sticks》 (2010) - 나뭇가지를 한아름 안은 채 서있는 여성을 조각한 작품입니다.
- 《Woman with shopping》 (2013) – 아기를 안은 피곤한 엄마가 쇼핑백을 양손에 든 채 서있습니다. 허공을 응시하는 엄마의 시선에서 육아의 피곤함과 무게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 《Young Couple》(2013) - 젊은 커플이 나란히 서있는 조각상입니다. 앞에서 볼 땐 다정해보이지만, 뒤로 숨겨진 남성의 손은 연인의 손목을 가만히 쥐고 있습니다.
- 《Man in a Boat》 - 조각배에 올라탄 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중년 남성의 시선은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작게 만든 조각은 관객이 내려다보는 시선을 만들며, 그만큼 감정적으로 더 다가가게 하고, 연민과 친밀감을 자극합니다.
3. 크기와 디테일로 만들어낸 인간 서사
론 뮤익 전시는 단순히 조각을 감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조각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존재를 마주하게 되는 경험입니다. 그의 조각은 장인의 기술을 넘어, 한 인간의 생애를 축소하거나 확대해 보여주는 감정의 기록물입니다.
어떤 조각은 너무 커서 낯설고, 어떤 조각은 너무 작아 마음이 쓰입니다. 그 사이에서 우리는, 내가 지나온 시간과 내가 마주할 미래를 떠올리게 됩니다.
4. 2025 론 뮤익 전시정보
📍 2025 론 뮤익 전시회 정보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일정)
전시 기간: 2025년 4월 11일 ~ 7월 13일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주최: 국립현대미술관 ×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대표작: 《Mask II》, 《Mass》, 《Man in a Boat》 등 다수 전시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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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의 작품 세계는 하나씩 뜯어볼수록 더 놀랍습니다. 인생의 통과의례를 이야기하는 론 뮤익의 작품 세계와 그의 대표작, 그리고 그 제작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어보겠습니다.
📚 [론 뮤익 시리즈 정리]
① 론 뮤익 전시 프리뷰 - 너무 커서 낯설고, 너무 진짜라서 불편한 론 뮤익의 '인간들' (현재글)
② 론 뮤익 대표작 Best 13 - 인생의 순간을 거대한 조각으로!
③ 론 뮤익의 조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 제작 과정 & 설치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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