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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뮤익의 조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 디테일한 제작과정과 설치 비하인드

생각하는 사람 2호 2025. 4. 1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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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듯한 조각으로 유명한 론 뮤익. 극사실주의 조각이라고 평가받는 그의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제작 과정부터 설치까지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1. 살아있는 조각, 론 뮤익의 디테일 표현법

 

1.1. 피부, 땀, 눈빛까지 살아 숨쉬는 조각

 
론 뮤익의 조각은 크기만으로 압도하지 않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오히려 관람객은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피부와 털, 손톱, 땀, 그리고 눈빛에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조각이 그냥 조각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마네킹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존재감을 가진 인물처럼 말이죠.”

 
그가 만드는 조각은 유리섬유와 실리콘으로 만들어진 사물이자 덩어리지만, 그 앞에 서면 우리는 생명을 가진 존재처럼 느끼며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1.2. 인물의 내면까지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제스처 포착

 
특히 뮤익은 사람들의 제스처를 섬세하게 포착해 그 사람의 내면까지도 시각적으로 드러내려 합니다.

"더 깊게 관찰하는 것은 저의 성향입니다.  저는 말없이 손을 만지작거리는 사람의 습관, 어깨가 살짝 처진 자세 같은 작은 디테일을 유심히 봅니다. 이런 사소한 제스처가 그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는 열쇠가 되죠. 저는 그걸 조각에 담으려 합니다."

 
 

2. 론 뮤익 조각 제작 과정, 얼마나 정교할까?

 

2.1. 점토 다듬기부터 몰드 작업까지

 
뮤익의 작업은 느립니다. 점토를 다듬는 과정에만도 수 시간이 걸립니다. 일단 몰드를 만들고 나면 점토를 다시 만질 수 없기 때문에, 처음 만들 때부터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초창기 과정을 론 뮤익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진행합니다. 작업을 도와줄 보조 인력들은 몰드 제작 이후가 돼서야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뮤익의 제작 과정을 지켜본 다큐멘터리 작가 드블론드는 그 과정을 명상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뮤익이 점토를 손으로 다듬는 장면을 몇 시간이고 지켜봤어요. 마치 명상을 하는 것처럼 보였죠. 그 조각은 이미 그만의 감정과 분위기를 갖고 있었어요.”

 
론 뮤익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Big Man》(2000)이라는 조각을 어떤 과정을 통해 제작했는지, 그 자세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여기서는 론 뮤익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 인터뷰 전문과 제작 과정 사진 보러가기)
 

2.2. 실제 모델을 보고 얻은 아이디어 -  《Big Man》의 비하인드

 
《Big Man》은 실제 모델을 참고해 만든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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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담요에 싸인 남자의 작은 조각을 상상만으로 만들고 있었는데, 우연히 참가한 누드 드로잉 수업에서 아이디어가 확장되었습니다. 뮤익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 자신의 작업실로 드로잉 모델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모델이 유연하지 않아 뮤익이 원하는 자세를 구현하지 못해 작업은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뮤익은 우연히 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모델을 보게 됩니다. 그때 모델의 자세가 그에게는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다고 합니다.

그건, 주저앉은 채 내면의 무게에 눌린 남성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뮤익은 이 자세로 30cm 크기의 점토로 된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그 위에 사람 실루엣을 그렸습니다. 이 결과물이 높이 2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남성 조각 《Big Man》으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2.3. 조각의 기초 작업과 디테일 완성법

 
뮤익은 먼저 철사와 치과용 고강도 석고로 작품의 뼈대(기초 구조)를 만든 뒤, 그 위에 점토를 덧발라 인체의 형태를 조각했습니다.
점토가 마르거나 손상되지 않도록 셸락(천연 코팅제)을 발라 표면을 보호한 뒤, 조각 위에 황마(헷시안) 천과 얇은 석고를 겹겹이 덮어 몰드(틀)를 만들었습니다.
 
그 몰드 안쪽에 폴리에스테르 수지(딱딱하게 굳는 액체 소재)를 부어 형상을 본뜨고 굳힌 다음, 정맥, 기미, 노화 반점, 피부 질감 같은 디테일한 표현을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더하는 후속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3. 감정을 부풀리는 장치

 
그런데 이 작품의 모델은 특이하게도, 피부에 털이 하나도 없는 체질이었다고 합니다. 뮤익은 처음에는 털을 붙일까도 생각해봤지만, 결국 자신의 조각에도 털을 붙이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델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느낌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Big Man의 발은 비정상적으로 큽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었죠. 감정을 더 강조하고 싶었거든요.”

 
이 말처럼, 론 뮤익에게 현실과 다른 비율은 단순한 시각적 선택이 아니라, 감정을 부풀리는 장치입니다.
 
 

4. 조각 설치의 기술 - 어떻게 거대한 작품을 옮기고 설치할까?

 

4.1. 전시 공간의 빛과 연출이 조각을 완성한다.

 
론 뮤익은 “조각은 자기 자체만으로 존재하는 물체가 아니라 공간, 빛, 관객과의 관계 속에서 진짜가 된다”고 말합니다.  천장의 높이, 전시장 바닥의 재질, 조명의 위치 같은 요소들이 모두 합쳐져 조각의 분위기와 인상을 바꾼다는 뜻이죠.
올려다보거나, 내려다보거나, 눈높이를 맞출 때, 관객은 조각에 대해 조금씩 다른 느낌을 받게 됩니다. 어떤 위치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작품에 대한 느낌과 경험이 달라지기 때문에, 론 뮤익은 작품을 전시할 때마다 설치할 위치와 높이에 매우 공을 들입니다.
그래야만, 단순히 ‘조각을 바라본다’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그 공간 속에서 한 사람의 인생, 죽음, 감정 속으로 들어가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4.2. '사람처럼' 다뤄야 하는 이동과 설치 과정

 
론 뮤익의 조각은 크고, 진짜처럼 보입니다. 이 조각들을 실제 전시장에 설치하는 과정 역시, ‘사람을 다루듯’ 신중하게 진행됩니다. 생각보다 더 섬세하고, 때로는 조심스러운 작업이죠.
론 뮤익의 전시를 총괄한 적이 있던 설치 책임자 데일 벤슨(Dale Benson)은, 그 과정에 대해 이렇게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론 뮤익의 작품을 들고 이동하다 보면, 정말 사람을 다루는 것 같을 때가 많습니다. 가슴이 움직이며 숨 쉬는 것 같거나, 눈이 깜빡일 것 같은 착각에 자주 빠집니다.”

 

4.3. 가볍지만 리얼한 소재의 비밀

 
그런데 이렇게 거대한 조각들을 도대체 어떻게 옮기는 걸까요? 무척이나 크고 무거워서 그 과정이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습니다.
뜻밖에도, 뮤익의 조각은 생각보다 가볍다고 합니다. 대부분 유리섬유와 실리콘 고무로 되어있어서,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무게가 적게 나간다고 하네요.
 
- 《Still Life》 같은 대형 작품도 두 사람이 옮길 수 있을 만큼 가벼움
- 《Couple under an Umbrella》 속 남성의 다리도 분리해서 쉽게 운반 가능
 
 

5. 이동이 불가능한 작품들 

 
대부분은 큰 문제 없이 전시장을 옮겨서 설치할 수 있지만, 《A Girl》만은 예외입니다. 5미터 크기의 이 대형 조각은 하나로 이어져 있어서, 분리해 운반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운반할 때면 8명의 인력이 함께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조각을 담은 나무 박스 또한 전시 역사상 가장 큰 운반 박스 중 하나였다고 할 정도니까요.
 
《Boy》 역시 운반이 불가능합니다. 너무 무거워서가 아니라, 미술관에 붙박이로 설치됐기 때문이라는데요,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덴마크의 오르후스 미술관에서 구입해 영구 소장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의 주요 전시 공간에 상설 전시되고 있어서 이 작품을 보려면 오르후스 미술관을 직접 방문해야 합니다.
 


론 뮤익의 조각은 단순한 시각적 자극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작품 하나하나에 깃든 디테일, 감정, 그리고 제작자의 철학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예술이죠.
 
📚 [론 뮤익 시리즈 정리]
① 2025 론 뮤익 전시 프리뷰 - 너무 커서 낯설고, 너무 진짜라서 불편한 론 뮤익의 '인간들'
② 론 뮤익 대표작 Best 13 - 인생의 순간을 거대한 조각으로
③ 론 뮤익의 조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 디테일한 제작 과정과 설치 비하인드 (현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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